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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자맷돌인가, 하늘의 별인가?

joy 2002.09.11 03:38 조회 수 : 1663

  
서부지구 목자 양육 세미나 강의안

제목 : 연자맷돌인가?  하늘의 별인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 두 사람을 들라면 누구를 말할 수 있겠는가?   다윗과 모세.

이 두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역사의 전면에 탁월한 리더로 등장하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전직이 같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직업이 무엇이었는가?    양치기.

하나님은 지금 이 시대에도, 아니 지나간 모든 시대에도 한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 반드시 거치게 하시는 과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양치기이다.  물론 그 양이 옛날 구약시대처럼 음메~~하고 우는 그런 양은 아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양은 바로 사람이다. 근데 참 재밌는 것은 그 양하고 사람하고 참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양은 어떤 짐승인가?  

우선 겁이 참 많다.   게다가 아주 둔하다.  그래서 사자나 곰, 늑대 같은 맹수들의 먹잇감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시력이 아주 꽝이다.  그래서 대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헤맬 때가 많다.

근데 아주 미련해서 코 앞의 먹잇감에 온통 맘이 빼앗겨서 그 길이 절벽인지 구덩인지도 모르고 고집스럽게 제 멋대로 가는 못된 버릇이 있다.

몸집이 아주 비둔해지지만, 다리는 아주 숏다리에다가 근력이 꽝이어서 돌부리 같은 곳에 걸려 넘어지면, 왠만해선 제 힘으로 일어날 수가 없다.

약한 시력에 둔한 다리 때문에 곧잘 상처가 나는데, 이놈은 상처가 나면 치료해 달라고 목자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한사코 무리 속으로 꼭꼭 숨어 버린다.   그래서 그 상처에 해충들이 알을 까고, 그 알이 혈관을 따라 뇌 속으로 들어가면 양이 미쳐서 죽게 된다.

그래서 이런 양들을 돌보려면, 목자들에겐 참 많은 수고와 댓가가 필요하다.  제 멋대로 가다가 길 잃은 양 찾아서 헤메랴, 게을러서 풀밭에 뻗어 있는 양 일으켜서 운동시켜주랴, 상처가 나서 곪고 있는 곳이 없는지 이곳저곳 신경 써서 살펴주랴, 지나는 길에 걸려 넘어질 구덩이나 돌부리는 없나, 걸어가다 넘어지는 놈 없나 훑어보랴, 게다가 밤낮 노리는 맹수들이 접근하지 않나 밤잠 낮잠 못자고 망보랴...

“(창 31:40)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 자기의 고생을 한탄하는 양치기 야곱.

그러는 동안에 목자는 극도의 인내심을 배우고, 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배우며, 이해하고 돌보는 태도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목자의 태도와 마음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섬기는 리더로 세우실 때 반드시 필요로 하시는 부분인 것이다.


하면 모든 양치기는 하나님이 쓰시는 리더가 될 수 있는가?  NO!
좀더 깊이 다윗이라는 양치기에 대해서 살펴보자.

(삼상 16:6-13)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12]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하나님이 다윗에게 기름부으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날 때부터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한 바 되었기 때문인가?  물론 그럴 수 있지만, 성경을 그런 방식으로 보면 별로 재미가 없다.  하나님은 인생을 살피신다.  그분이 사용하실 만한, 그분의 뜻을 이루기에 합당한 도구가 될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살피신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쓰실 만한 사람으로 택한 바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새의 장자 엘리압처럼 버린 바 되기도 하는 것이다.(7절)

행 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시 89:20)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 나의 거룩한 기름으로 부었도다』

하나님은 온 이스라엘 땅을 살펴보셨다.  그 중에 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그 백성을 돌보며 인도할 만한 사람이 될 것인지를 두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찾으셨다.  그러다가 그 눈이 문뜩 베들레헴이라는 마을에 멈추셨다.  그리고 이새라는 노인의 집의 천덕꾸러기 막내아들을 주목하여 보셨다.  그리고는 ‘바로 이 소년이 내가 그렇게 찾고 찾았던 바로 그 사람이구나. 내가 그를 통하여 나의 뜻을 다 이루게 하겠다’ 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보신 것은 무엇인가?   다윗의 붉고 빼어나고 아름다운 외모인가? 그의 말솜씨와 물맷돌 던지는 솜씨인가?

무엇이 한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여겨지게 하는가?  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온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만한 사람으로 세워질 만한 조건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영어?  컴퓨터? 전공실력?  다 중요하다.  우리의 부르심을 따라서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야 할 영역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한 사람을 세우시고 사용하시는 조건이라면, 우리 하나님은 너무 불공평하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  때로는 실력마저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더 좋은 환경 가운데서 더 많은 기회를 부여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더 열악하고 황무한 환경 가운데 놓여지기도 하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사람을 세우시는 기준이 이런 외면적인 실력과 조건뿐이라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그분의 말씀은 거짓말이 되어버린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과 같지 않다 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기준은 사람의 기준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분이 보시는 것은?  중심이다. 외모나 신장이 아니라... 마음이다.   실력이나 조건이 아니라.... 성품이다.  인격이다.  

누구도 삶의 조건을 스스로 선택하며 태어날 수는 없다.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많은 상황들도 나의 뜻과는 상관없이 일어나서 나에게 영향을 미치며, 나를 내가 원치 않는 곳으로 이끌어 간다.   그것이 나의 외모일 수도 있고, 나의 실력이 될 수도 있다.  나의 가정일 수도 있고, 나의 학교일 수도 있고, 나의 직업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삶에서 나의 책임의 요소가 간과되어질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삶에 있어서 때로는 아니 어쩌면 많은 순간에,  이제 내가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나의 선택이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그런 상황에 놓여질 수도 있다.  왜 나는 이 모양일까?  왜 우리 집은 이럴 수밖에 없을까?  왜 나는 이 학교에 왔을까?   내 인생은 늘 이런 모습, 이런 차원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인가?  

그러나 실망하지 말라.   우리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모든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그분이 보시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분이 보시는 것은 무엇이라고?   중심이다. 마음이다.

내가 내 환경과 상황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내가 내 마음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내가 내 환경에 대한 책임을 질 수는 없다해요, 내 마음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도 미룰 수 없다.  내 마음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나의 선택이다.  내 중심에 무엇이 자리잡고 있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나의 책임이다.

다윗의 중심엔 무엇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인가?

사무엘(엄청난 위엄과 권위가 있던 사사, 선지자, 제사장이었던)이 명했음에도 그 제사 자리에 올 수 없었던 다윗  => 상처 가운데 자란 다윗 : 사랑받지 못함.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남. 다른 사람에게 따돌림 당하는 천덕꾸러기.  

수금으로 자신의 마음의 상처를 달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다윗.
하나님 만이 그의 위로자가 되시며, 그를 조건없이 사랑하여 주시는 분임을 앎.

부모도, 형제도 어느 누구도 다윗을 관심있게 보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주목하시며, 그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선택하시며, 그에게 기름부으셨다. .

다윗은 부모의 인정도 가족의 사랑도, 관심도...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하나님을 그의 분깃과 소유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자기의 소유와 실력을 의지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 사는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그분의 이름이 더럽혀질 때(17장)에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싸우는 다윗 - 그가 더 용감하고 싸움을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다윗에게는 생명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을 전부로 여기며, 그분의 이름과 은혜를 의지해 사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는 언제든 그 음성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주목하여 보신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목장에서 양을 치는 다윗의 모습이었다.

삼하 7:8)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삼상 17:34-37) 『[34]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어린 양를 움키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어린 양을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큰 양도 아니고, 어린 양 한 마리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거는 다윗의 마음.  why?
그에게 양은 자기의 생명처럼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why?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도, 자기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도 없는 다윗에겐 (물론 하나님이 계시지만...) 그의 몇 마리 안되는 양떼가 그가 사랑을 주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유일한 대상이었다.   그러기에 다윗에게 양은 자기의 친구와 같고, 가족과 같고, 연인과 같을 수도 있고....

탁월한 물맷돌 던지기 실력자, 그러나 그것이 성공과 명성을 얻고 자기가 잘되기 위함이었을까?
그것은 내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내게 맡겨진 양떼를 사랑하고 돌보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한 결과인 것이다.  

"누가 과연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내가 귀하게 여기는 것처럼 귀하게 여길 수 있는가? "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인 것이다.

비전, 열정, 언약, 구속의 계획....이런 것에 목숨을 거는 것 너무 귀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 그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나눠 주시고, 그러한 놀라운 계획에 동참하시도록 우리를 부르시기 전에 반드시 우리에게서 보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 사람을 향한 태도이다.    

당신은 당신에게 맡겨진 한 영혼을 “주께 하듯이” 대하고 있는가?

왜 주님은 온 세상을 구원하는 방법으로 이렇듯 비효율적이고 지루한 듯한 방법을 사용하셨는가?
(필립 얀시의 책 중 천국에서의 천사들과의 대화:)

(딤후 2: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제자양육은 산술급수적 증가가 아닌 기하급수적 승법번식의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12명의 제자들을 양육하실 때는 그 열 두 사람을 통해 온 열방이 제자화 될 것을 바라보신 것이다.   열 두 제자가 3년에 한 사람의 제자만 만들어 내도 이 온세상이 제자화되는 데에는 한 세기가 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을 제자삼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파워가 있는 것인지를 알았고,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한 사람들은 바로 공산주의자들이다.    그들의 제자삼기에 얼마나 능했는지....
그들은 50년 만에 이 지구상의 절반에 가까운 나라를 공산주의에 무릎꿇게 했다.

그러나 이렇게 강력한 파워가 있는 제자 삼기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 바로 “한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인 것이다.

마18: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 [7]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 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연자맷돌 : 소나 말이 끌어야 하는 엄청난 맷돌.
왜 연자맷돌을 목에 매어야 한다고 하는가?   또 헤엄쳐 나와서 다른 사람 실족케 할까봐...
실족케 하는 그 사람의 그 실족케 하는 원인이 되는 팔, 다리를 자르고 눈을 뽑아야 할만큼 한영혼은 귀하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한영혼을 양육한다는 것은 너무나 두렵고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 힘과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며, 반드시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필요하다.   주님이 부어주시는 목자의 마음, 예수님의 그 사랑의 심장이 우리 안에 있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소망이 되고 기대가 되는 말씀이 있다.
(단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주님이 우리를 목자로 부르시고 세우셨다.  
그렇다면 연자맷돌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하늘의 별을 택할 것인가?

그것은 나의 중심에 무엇을 담을지에 대한 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지금 하나님이 당신의 중심을 보신다면 무엇이라 말씀하시겠는가?

"내 마음에 합한 자로다.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인가?

아니면 "쯧쯧쯧...."인가?

아직 선택의 기회는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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