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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참여적 선교를 지향하며...

최인혁 2003.08.08 01:11 조회 수 : 1566

안녕하세요?
중동선교회 최인혁 간사입니다.
99년 호주 멜번 DTS를 했구요.
내년에 다시 학교에 들어갑니다.
잘하면 그때 얼굴 뵙구요..

각자 처소에서 같은 맘을 품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수고하시는 노고에 존경과 응원을 보냅니다.
더운 여름날, 건강 조심하시구요.
님들의 삶과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아래 글은 모 선교잡지의 청탁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전통적 개념에 비해 다소 과격한 느낌이 있습니다만 제가 원하는 사역의 방향성입니다...
비록 이 글에서는 선교사와 선교단체로 국한시켜 언급했지만 사회참여의 문제는 비단 선교사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관심을 가져야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견이 있으시거나 토론을 원하시면 메일을 주세요(norkorea@hanmail.net).

======================================================

선교단체와 기독교 NGO의 연합
- 기능적 협력을 넘어 사상적 연합으로(사회 참여적 선교를 지향하며)


최인혁1)


들어가면서

이라크 전쟁 이후 한국 교회와 선교단체들이 보인 이라크에 대한 관심은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중동지역이나 이슬람권을 전략적 목표로 하는 선교단체들은 물론, 기독교 정신 위에 설립된 구호분야 NGO들, 그리고 개 교회와 각 교단총회들까지도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이라크 구호를 위한 성금을 모금하고, 속속들이 긴급구호팀 내지 방문단을 구성하여 이라크에 들어가 의료사역과 식량, 물품조달 사역을 하였다. 어떤 단체들은 인력 중심으로, 어떤 단체들은 물량과 자금 중심으로 사역하였는데, 여하튼 한국 기독교계가 이라크에 쏟아 부은 사랑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2)

긴급구호사역이 어느 정도 마감되고 보다 장기적인 후속 사역이 준비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지금까지의 사역과 앞으로의 전략을 주의 깊게 살펴볼 때에 눈에 띄게 드러나는 특징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선교단체와 NGO간의 협력”이다.


중동선교회(MET)와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KFHI)의 협력

훌륭하게 협력사역하는 많은 단체들이 있었으나, 부족하지만 필자가 섬기는 중동선교회(회장:조정해, 이사장:두상달, 본부장:정형남)의 예를 잠깐 들도록 하겠다.

아메리카 합중국의 바그다드 함락 직후 이라크 긴급구호사역이 시작될 즈음, 현지에 있는 몇 몇 선교사들의 조심스러운 건의가 한국본부로 접수되었다. 내용인 즉은, 보다 원활한 이라크 사역을 위해 선교회를 NGO로 등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라크에 들어가는 루트를 찾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단체들과는 달리, 현지에서 NGO로 등록된 단체들은 타 단체보다 이라크 입국이 수월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본부는 선교회가 이라크 사역을 위해 NGO 등록절차를 밟기에는 시기적으로 늦었고 또한 그럴 여건도 충분치 않으며, 오히려 그보다는 기존의 NGO와 협력사역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하였다.

바로 그 때 선교회는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로부터 이라크 사역을 위한 지원 요청을 받았고 이에 기꺼이 협력하기로 결정하였다. 중동선교회 이사장인 두상달 장로가 기아대책기구의 이사이기도하고, 또한 본부장 선교사인 정형남 목사가 요르단에서 이라크인 교회개척사역을 할 당시, 기아대책기구의 요르단 지부장으로도 섬겼었기에 두 단체가 협력하기로 결정하는 데에는 아무 무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중동선교회는 현지 선교사들의 man power가 있고 기아대책기구는 긴급의료팀, 구호물자 등의 자원과 구호사역의 know-how가 있으니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며 협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아름다운 일이었다.

긴급구호사역을 마친 지금, 중동선교회와 기아대책기구는 이라크에 “바그다드 복음주의 신학교(Baghdad Evangelical Theological Seminary)”(가칭)를 세우는 일에 연합하여 용왕매진하고 있다. 3)


선교단체, NGO의 협력사역의 필요성

이미 인식하고 있던 사실이지만, 선교단체들은 이번 이라크 긴급구호사역을 경험하면서  창의적 접근지역, 특히 이슬람권의 선교를 위해서는 NGO가 전략적 도구로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것 같다. 사역 내용의 측면에서도 그러할뿐더러 선교단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보안의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이러한 사실을 일찍부터 인식하고 있던 일부 앞서가는 단체들은 이미 NGO로도 등록하여 훌륭히 사역하고 있다.4) 그러나 실제로 NGO까지 준비된 선교단체는 그리 많지 않다. 중동선교회 역시 정관 제18조에 “중동선교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기관으로 NGO를 둔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나 여건상 준비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선교단체가 반드시 NGO를 둘 필요는 없다. 두 조직의 사역 방향과 실무의 차이는 너무 크기 때문에 많은 준비와 시행착오 없이는 선교단체가 NGO의 역할까지 감당할 수 없다. 더구나 선교단체가 기존의 NGO와 뜻하지 않는 경쟁관계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분량과 달란트대로 각자의 전문분야를 섬기면서 함께 연합하여 동역함이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이면서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일 수도 있다.5)

보안상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최근에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선교단체들과 NGO 간의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모임이 결성되었다. 이 모임의 탄생배경은 창의적 접근 지역 선교를 위한 선교단체의 방법론적 필요와 현지 상주 인원이 없는 NGO의 인력적 필요에 있었다. 다시 말해, 선교단체는 NGO라는 도구가 필요하였고 NGO는 현지 인력이 필요했는데, 두 조직이 연합하면서 선교단체는 NGO의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고 NGO는 선교사들을 현지 인력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아름다운 연합이 아닐 수 없다.


기능적 협력? 사상적 연합!

지금까지 선교단체의 입장에서 NGO와의 협력의 필요성을 약술하고 간략하게 예를 들었는데 자칫 지금까지의 논의를 잘못 이해하면 마치 두 조직이 서로의 필요에 따라 자신의 기능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의 논지는 그것이 아니다. 물론 선교단체와 NGO가 자신들의 약점을 서로 보완하면서 각자가 추구하는 사역의 열매를 함께 얻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일이고, 사실상 두 개의 전혀 다른 조직이 그렇게 협력할 수 있는 것만도 쉽지 않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더욱 중요한 사실은 단지 기능적 필요에 의해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사역의 정신, 사상적 바탕에까지 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선교단체는 단순히 접촉점 내지 사역적 돌파, 또한 보안을 위하여 NGO를 이용하는 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1974년에 John Stott가 초안 작성하여 발표된 로잔언약(The Lausanne Covenant)은 「5.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한 문장 한 문장이 너무 소중하므로 요약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창조주이신 동시에 심판주이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사회 어디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인간을 모든 압박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관심에 동참하여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종, 종교, 피부색, 문화, 계급, 성 또는 연령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은 천부적 존엄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사람은 서로 존경받고 섬김을 받아야 하며 누구나 착취당해서는 안된다. 이 사실을 우리는 등한시하여 왔고, 또는 종종 전도와 사회참여가 서로 상반된 것으로 잘못 생각한 데 대하여 뉘우친다.

사람과의 화해가 곧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며, 또 사회 참여가 곧 전도일 수 없으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닐지라도, 전도와 사회정치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 부분임을 인정한다. 이 두 부분은 모두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교리와, 이웃을 위한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순종의 필수적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소외와 압박과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부정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것을 공박하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의 나라에 다시 태어난다. 따라서 그들은 불의한 세상 속에서 그 나라의 의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의를 전파하기에 힘써야 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구원은 우리로 하여금 개인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총체적으로 수행하도록 우리를 변화시켜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행17:26,31; 창18:25; 사1:17; 시45:7; 창1:26,27; 약3:9; 레19:18; 눅6:27,35; 약2:14-26; 요3:3,5; 마5:20; 6:33; 고후3:18; 약2:20)“
6)

또한 1989년에 선포된 마닐라 선언문(The Manila Manifesto)은 「4. 복음과 사회적 책임」에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전략)...참된 선교를 위해서는 겸허하게 그 사람들의 세계에 들어가서 그들의 사회적 현실, 비애와 고통, 그리고 압제 세력에 항거하며 정의를 위하여 투쟁하는 그들의 노력에 동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후략)”7)

물론 선교의 개념 정의에 대한 시각차이는 있다.8) 이태웅 박사는 최근 전통적 의미의 선교활동 - 그리스도를 영접케 하여 회심하게 하는 복음전파사역 - 이 저조해진 이유 중 하나로 John Stott의 로잔언약을 들면서 다소 부정적으로 분석하고 있기까지 하다.9)

그러나 선교의 범위를 협소한 전통적 정의만으로 한정짓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이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명령 중 Religious Mandate만 강조하고 Cultural Mandate를 등한시하는 오류이다. 이사야 61장10)을 비롯한 성경전반에 나타나는 선교적 진술의 내용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지상대명령(The Great Commission)(마 28:18-20)에도 어긋난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고 하셨는데 그 “분부한 모든 것”은 좁은 의미의 복음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여 이 땅 위에 발붙이고 인간 세상에 살면서 마지막 호흡을 다하시기까지 모범을 보이신 모든 섬김 - 낮은 자, 가난한 자, 병자, 박해받는 자, 장애인, 죄인들과 함께 하시고 위로하신 사역 - 과 가르침, 심지어는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사역까지도11)포함하는 것이다.

이사야 59장에는 “온 세상에 만연되어 있는 불의를 향해 그리스도인이 적극적으로 반응하기를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12)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리대로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4절 a)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행하는 곳에는 공의가 없으며...(8절 a)
그러므로 공평이 우리에게서 멀고 의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즉...(9절 a)
공평을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도다.(11절 b)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의가 멀리 섰으며...(14절 a)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시고 그 공평이 없은 것을 기뻐 아니하시고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13)...(15절 b - 16절 a)


하나님께서 “사람이 없음과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다”고 말씀하신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불의와 악의 구조에 대항해 싸우는 사람을 원하고 계신다. 그러한 사람이 없는 상태를 매우 당황해하신다.

초기 기독교의 선교사들과 지도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이러한 마음을 충분히 인식, 실천하고 있었으며,14)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캐리 역시 그러했다.15) 기독교가 퍼진 곳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 개혁하고자 했으며 실제로 많은 열매를 얻었다는 사실은 케네스 라토렛 같은 저명한 기독교 역사가는 물론, 세속적 역사가들까지도 공히 기록하고 있다.16)

아메리카 합중국의 「전국 복음주의자 연합(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산하 국제 지원부인 「세계 구제 법인(World Relief Corporation)」은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 비유”를 다음과 같이 다소 흥미롭게 해석하면서 기독교가 인류의 실질적 필요를 채우는 일에도 본질적 가치를 부여하고 노력해야할 것을 권고한다.17)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 고질적 영양실조와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식량공급사역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 물이 없거나 오염된 물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수자원 개발 및 정화사역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 전쟁, 억압, 기근, 종교, 인종 등의 다양한 이유로 인해 자신의 집을 잃고 떠날 수밖에 없는 난민들에 대한 사역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 인재 및 자연재해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역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 간단한 예방주사조차 맞지 못해 질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사역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 기독교 신앙으로 인해 박해받고 목숨을 잃는 성도들에 대한 사역

절박하게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의 대부분이 절대적 빈곤과 질병, 사회 구조적 불의와 착취에 유린당하고 있는 사람들(특히 여성들과 아이들이)이라 해도 그리 큰 과장은 아닌 현실을 놓고 볼 때, 우리의 선교사역의 지평은 당연히 넓혀져야 할 것이다. 세계 총생산량의 30%가 매춘, 마약, 인신매매, 노동착취 등의 악의 구조와 연관되어 있는 현실에도 선교사와 선교단체는 적극적으로, 조직적으로 저항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의 힘으로 유토피아를 이룩하고자 하는 낙관적 인간론에 의존하는 자세로서가 아니라, 오직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정념과 슬픔에 같이 고통을 당하는 자세로 - 비록 우리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비관적 한계 상황에 직면할지라도 - 인간 세계, 나아가 모든 피조 세계에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과 창조 섭리들이 드러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나가면서

지금까지 “선교단체가 NGO를 조직하거나 기존의 NGO와 협력할 때에는 사상적 지평의 확장과 연합이 단순 기능적 필요에 의한 협력 행위보다 선행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성경적 근거와 선교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다시 강조하여 말하면, 원조와 개발과 교육과 여성과 기타 NGO적 사역, 나아가 사회정의, 구조 및 정치 개혁에 이르기까지의 사회참여가 바로 선교단체 자신의 직무임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뜨내기 선교사 후보생인 필자가 건방지게 떠들어댔지만, 이미 많은 선교사들과 단체들이 각자의 현장에서 피묻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뿐만 아니라 community development를 위해, 악의 구조와 싸우기 위해 불꽃으로 타오르는 심지처럼 땀흘리고 있다. 온 맘으로 그들에게 성원과 존경을 보낼 뿐이다.

우리 모두의 정직한 땀을 통하여 맺어지는 기쁨의 열매들을 뭇사람들이 먹으며 즐거워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기대해본다.


1) 중동선교회 간사, 연세대와 총신신대원을 졸업했으며 선교지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2)「이라크 난민 돕기 시민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는 서경석 목사는 “서구 NGO들은 현지 정서상 사역하기 어렵고 일본은 이라크 지원 열풍이 없는데 한국에서만 과도하게 이라크 바람이 불고 있다. 이것은 좋은 현상이다.”라고 말한다.(서경석, “이라크 시민사회 활성화와 한국선교단체의 과제”, 2003)

3) 이 일은 기아대책 긴급구호 2차팀의 사역당시 바그다드 복음주의 교회 담임목사인 이크람의  요청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중동선교회 선교사인 공일주 박사로 인해 신학교 건립 협약 문서가  만들어져 체결되었다. 필자가 글을 쓰는 지금, 본부장 선교사인 정형남 목사는 이라크 5개 교회 지도자들과 협약 - 1차 협약보다 발전된 - 을 맺기 위해 이라크에 가 있다. 오는 8월 25일, 한국 후원이사회 창립총회가 열리며 개교는 내년 1월로 계획하고 있다.

4) 선교단체가 NGO로 등록하여 사역하는 것은 보안상의 이유도 크기 때문에 예시할 수는 없다.

5) NGO의 종류는 구호, 원조, 개발, 교육, 환경, 여성, 학술, 자선, 경제정의 등 매우 다양하고 그 성격에 따라 규모도 다양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경우에 따라서”이다. NGO의 성격에 따라 선교회가 직접 NGO를 두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고, 기존 NGO와 협력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6) 조종남 편저, 로잔 세계 복음화 운동의 역사와 정신(서울:IVP, 1990), pp.55-57에서 재인용.

7) Ibid., p.78.

8) 이현모 박사의 논문 “선교의 개념에 대한 죤 스토트의 정의와 그 반론에 대한 비판적 분석”(침신교수 논문집 16편 또는 텐트메이커선교(서울:펴내기, 1994), pp.180-204) 참조.

9) 이태웅 박사는 “선교와 회심”(선교연구 30호)(서울:GMTC, 1995)에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복음주의 선교운동에 있어서 회심이 약화된 이유:
18세기 이후 초기 현대 선교운동에서는 경건주의 운동의 영향으로 회심을 선교의 핵심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에큐메니칼 운동과 맥을 같이 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복음주의 계통에서도 선교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0년에 들어서면서 복음주의 진영에서도 회심에 대한 강조가 약화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1. 1974년 세계 복음화를 위한 로잔 국제대회 :
복음주의 진영에서 회심을 강조하는 데서 벗어나게 하는 선교신학 형성은 바로 로잔대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태웅 박사가 이러한 선교의 개념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일찌기 “선교신학의 변천”(선교연구 14호, 1991)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이제는 서서히 선교신학적인 면에서 새로이 정립해야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에 대한 강조점을 양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적인 책임을 회피하는 쪽으로 가서도 안되겠다. 이것을 달리 표현한다면 세계복음화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보의 양보도 할 수 없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왕국이 이 땅에서 경험되는 그 부분을 우리가 무시해서도 안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왕국의 현실화만을 너무 치중하다 보면 해방신학 쪽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만이 그 왕국을 완성시킬 수 있다는 종말론적인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할 것이다.”

10)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1-2절)

11) 쉐일러 매튜스, 예수운동과 혁명(박현덕 역)(서울:대장간, 1991) 참조.

12) 월드런 스콧트, 사회 정의와 세계선교를 향한 제자도(강선규 역)(서울:두란노, 1988), p.237.

13) 개역성경은 단지 “이상히 여기다”라고 표현하였으나, 히브리어로는 “놀라다, 당황하다”라는 뜻이며, NIV는 “appalled”(소름끼치도록 섬뜩한)라고 표현하여 한글개역성경보다는 원의미를 더 잘 살리고 있다.

14) 월드런 스콧트, op. cit., pp.14-17 참조.

15) 랄프 윈터, 스티븐 호돈 공동편저, Perspectives on the World Christian Movement(정옥배 역)(서울:예수전도단, 2000), pp.308-311 참조.

16) 월드런 스콧트, op. cit., p.29.

17) 랄프 윈터, 스티븐 호돈, op. cit., pp.382-38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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