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무분별한 광고글들로 인하여 로그인 후 글쓰기가 가능하도록 전환합니다. 선배님들의 양해를 부탁드리며, 귀찮으시더라도 회원가입 후 로그인 하셔서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깊은 슬픔(김신일씨를 생각하며)

2004.06.25 03:55 조회 수 : 1198

난 어릴때 시골에서 자랐다. 광주에서 좀 떨어진, 논과 밭에서 살아가는 분들이 더 많은 곳에서. 산과 냇가 그리고 동네 어귀가 놀이터였던 곳에서.
그 곳에서 아주 큰 사건을 두번 만났다. 박정희의 죽음(이건 머 얘기할 필요없고)과, 9살이던 초등학교 3학년에 만난 광주의 80년 5.18. 민주화 운동이다.

탄광이 있던 마을에서 내가 5.18에 대해 기억나는 것은, 시민군이 와서 탄광의 트럭을 가져갔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옅들은 것이다. 어른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민군을 원망하고 욕하기 보단 어린 내가 이해하기 힘든 묘한 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광주에 있는 도청에 가면 시체가 쌓였다는 둥, 임산부의 시체도 있다는 둥의 소문이었다. 난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단지 학교 안가서 좋아하던 시골 초등학교 꼬마였다.

광주로 이사를 한후,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서 살았다. 게다가 난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를 다녔다. 민주화를 외치며 데모는 일상이던 시대. 한달에 10일 이상은 최루탄을 맡으며 살았다. 수업중에 데모가 심해지면 학교 뒷문으로 멀리 돌아 하교를 하기도 하고, 아예 늦게 집에 가기도 했다. 저녁에 데모가 심한 날은 최루탄을 맡으며 저녁을 먹어야 했다. 데모가 있으면 며칠은 대학교 앞은 최루탄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며 학교를 가야했다.

고등학교는 다행히 부속고등학교가 아닌 집에서 좀 먼 사립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서 더이상 아침에 눈물을 흘리며 학교에 다니지는 않게 되었다. 하지만, 광주가 어떤 도시인가…2학년이 되면서 문과였던 나는 친구들과함께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와 독재에 대해 바르게 가르치다가 해직된 교사들이 쓴 책들을 돌려가며 읽었고, 한번은 자율학습 반대를 외치며 전교 학생들이 일어나 데모를 해서 자율학습을 폐지시켜버렸다.
3학년때는 잊지 못할 사건이 일어났다. 전국교직원노조가 정식으로 출범하면서 정부와 충돌을 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학교가 몇달간 정상적이지 못했다. 그땐 불법이던 전교조를 후원하기 위한 학생들 모임인 광주고등학교 협의회 회장이 우리학교 학생이었고, 교사들 절반이 전교조에 가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국에서 두번째로 많은 해직 교사를 갖는 학교가 되었다. 전교조 교사를 탄압하는 온갖 소식들이 학생들에게 전해지고, 전교생은 아침 등교와 함께 데모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몇몇 학생들은 수업중에 학교를 빠져나가 전교조 합법화를 위한 대학생들 데모에 참여하였고, 선생님들은 빈자리를 보시면서도 출석을 부르지 않으셨다. 결국 여름방학때는 고3에게도 자율학습 보충수업이 취소 되어 우리는 정말 집에서 자율학습을 해야했다. 방학이 끝난 후에도 학생들은 해직된 선생님들을 기다리며 수업거부를 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낸 나에게 대학을 서울로 갈 때 주위에서 하시던 말 “너무 심하게 데모하지 마라” 였다. 하지만…데모를 통해서도 옳다고 생각되는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을 이미 경험하였던 터라…데모는 그리 많이 참여하지 않았고, 이미 학생들의 데모하는 강도나 횟수도 많이 줄어있었다.
하지만.. 1991년엔 명지대 강경대 학우가 데모 도중 쇠파이프에 맞아 죽게 되고, 4학년이던1996년엔 우리학교 노수석 학우가 데모 도중 부상을 당하고 병원에 옮겨 죽게 되었다. 그냥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책과 가방을 도서관에 그대로 두고 학교 백향로에 쭉 늘어선 추모 행렬에 참여하여 신촌을 지나 시청 그리고 종로까지 함께 걸어갔다.

이렇게 이렇게…슬픈 역사는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이번에 이라크에서 또 한명의 젊은 생명이 죽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거대한 힘에 의해서…반항하지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그렇게…독재에 항거하며 나라에 대항했던 사람들이 느낄 그런 무기력을 또 느끼면서…
우린 왜…잘못된 결정을 하는 그런 사람들이 죄없는 사람을 죽일 수 있게 되어있는지…

광주 사람들에겐 슬픔이 가슴속에 잠겨 있다. 세상에 대한 아픔을 어찌하지 못해 가슴 속에 묻어둔 슬픔. 내 고향을 떠나 서울서 생활하면서 느끼기 시작했던 광주 사람의 슬픔이다. 그래서 5. 18 민주화 운동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던날 난 눈물이 날뻔했고, 바로 목포가 고향인 선배에게 전화를 하며 감격해었다. 뒤틀린 무언가가 조금씩 고쳐져 갔기에… 아픈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어루만져 졌기에…
하지만, 그 슬픔이 한국을 떠나 온 지금 또 여기서 조금도 조금도 엷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기에 더 더욱 슬프다.

또 한번의 슬픔을 보면서 그저 무기력하기에…
난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해야될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로그인이 안 될 땐! [5] 레페리온 2005.08.31 17294
230 28일에 졸업입니다. [2] 은잰데요 2005.02.22 1233
229 장가 갑니다 ^___^ [2] file 김동연(신학95) 2005.02.11 1314
228 축 승민이형 드디어 합격!!!!!! [1] 황도연 2004.11.09 1481
227 귀국했습니다 [14] 황도연 2004.09.30 1262
226 때가 차매...결혼합니다. [8] 2004.09.25 1352
225 연세대 캠퍼스 투어를 잘 마쳤습니다. 정수 2004.09.03 1517
224 캠퍼스 워쉽 투어 D-0일 상황입니다. [1] 정수 2004.09.01 1254
223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배님들께 연세대 캠퍼스 워쉽 투어의 상황을 나눕니다. 정수 2004.08.31 1469
222 캠퍼스 투어를 맞이하며... [1] 임장순 2004.08.26 1400
221 OB주소록 살짝 변경판입니다. [4] 이제현 2004.08.24 1420
220 [re] OB주소록 살짝 변경판입니다. 김영화 2004.09.10 1296
219 가고싶다 캠퍼스투어ㅠㅠ [1] 지애 2004.08.23 1426
218 슬픔 다음 희망(유족의 메시지) 2004.06.30 1365
» 깊은 슬픔(김신일씨를 생각하며) 2004.06.25 1198
216 내년이면... [1] 은잰데요 2004.06.23 1339
215 결혼합니다^^ [8] file 황희승 2004.05.30 1413
214 즐거웠어요^^* [2] 신혜정 2004.05.25 1177
213 석가탄신일 날 영화네서 모일려고 합니다. 시간은 오후,, [9] 박진희 2004.05.20 1463
212 내일 홈커밍데이 장소는 공대 B001입니다. [1] 군사지훈 2004.05.16 1361
211 홈커밍데이라... 나도 가고 싶다... [6] 황도연 2004.05.15 1199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