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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학교 3일차 강의

정수 2003.10.29 17:12 조회 수 : 5831

예배학교 셋째날 ; 예수전도단의 예배(윤주형 간사님)


예수전도단 예배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성령세례, 예배인도자와 찬양인도자의 구분된 예배, 자유함, 역사와 전통을 지닌 예배, 찬양과 말씀이 조화로운 예배, 수위 아저씨들이 신경 쓰는 예배, 회중 선포와 침묵이 있는 예배, 교제가 있는 예배, 삶의 적용이 있는 예배, 선교지향적인 예배, 방언 찬양, ...


역대 찬양인도자들로부터 계속 들어왔던 것은, 예수전도단 안에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것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굳이 꼽으라면 예배, 중보기도, 영적전쟁이라는 것이다.


예수전도단의 예배에 앞서서, 예배에 대한 정확한 개념들과, 예배를 향한 올바른 지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은 예배자로서 뿐만이 아니라 예배인도자로서 서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예배에 대한 마인드를 한가지로 말한다면 어떻게 말하겠는가? 교회에 있어 가장 중심적인 성례라고 할 수도 있고, 부흥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좀 더 쉽게, 여러분이 그 예배를 드릴 때에, 예배를 인도할 때에 가장 포인트를 두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회중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는 것일 것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 그러면서도 고민은, 혹시 주님 앞에서 열정을 다해 예배했는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고민. 열심히 찬양은 했는데, 회중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을 때, 스스로 두려워지게 될 것이다. 그 고민. 저 역시 그렇다. 스스로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경험하게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짧은 시간 안에 하나님을 경험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의 임재를 늘 예배에서 경험하고 있는가? 늘 경험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새로 산 차를 보며 늘 기쁨을 누리며 산다. 몇 시간째 광택을 내고, 잠을 잘 때에도 차가 잘 있나 살펴본다. 그것은 자동차를 향한 예배이다. 어떤 학생이 세 시간째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뛰며 좋아한다. 방 안에는 브로마이드로 가득차있고. 그 것은 가수를 향한 예배이다. 많은 사람들은 예배하도록 창조되어 있다. 자기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을 향해 예배하게 된다. 그 곳에 가장 큰 가치와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화요모임에서, 모임 때가 되면 하얀색 턱시도를 입고, 예배팀은 악기 세팅하고 있는데 손도 까딱 안하고 저쯤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예배 시간이 시작되면 무대에서 멋지게 찬양을 시작하던 간사님이 있었다. 예배가 끝나면 항상 어디선가 여중생들 열댓명 정도가 '오빠~'를 부르며 달려 나오곤 했다. 그 아이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찬양인도하는 간사님을 예배한 것이다.


찬양인도자는, 회중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 저들의 눈을 열어 하나님을 보게 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을 경험하며 어떤 분인지 알 수 있고, 그 분 안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중 굳이 한 가지를 말하자면 치유이다. 예배하며 하나님을 볼 때에 그들에게 치유가 일어나는 것을 본다. 새롭게 되는 것을 본다. 그것은 심리학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배를 통해 치유하시는 것이다. 캠퍼스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당연히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이 그 곳에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시편에는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라고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를 우리의 찬양에 두시겠다고 말하고 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주인이 빠진 예배를 드린 것은 아닌가?


요즘엔 예배인도자가 되겠다는 아이들을 많이 본다. 그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멋있잖아요', '전 노래를 잘하거든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그들에게는 이미 예배에 대한인식이 왜곡되어 있는 것이다.


주의 우편에는 즐거움이 있고 기쁨이 있다. 우리의 예배는, 정말 그 분을 경험하면서부터는, 굳이 어떤 노력이 아니라, 그 분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 그 때에 그 분이우리의 힘과 능력이 된다. 그 때에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우리에게 소출이 없어도 그 분을 기뻐하겠다는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예배를 하면, 그 사람 안에 변화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면서부터, 예배하게 되면서부터,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우리가볼 수 있는 세상 사람들과 뭔가 다르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가? 하늘나라의 삶을 살아야 한다. 삶에 주님이 드러나야 한다. 매일 예배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 주님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큰 문제이다.


우리가 주님을 닮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랑하기 때문에? 아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안 닮는가? 미워하는 사람의 싫은 모습도 닮지 않는가? 그렇다면 닮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배에서 주님을 만나기 때문이다. 반대로, 주님을 닮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배에서 주님을 만나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 얼마만큼의 시간을 그 사람과 함께 하느냐에 따라 그 속도가, 진도가 결정된다. 우리의 삶에 주님과 같이 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서로를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의 형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고백이 자연스럽게 나와야한다. 왜냐면 예배 가운데 그분의 속성을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속성 중 분여성(나누어줄 수 있는 속성) - 사랑, 온유, 섬김, 긍휼, 겸손, 성실, 자비 등등 하나님의 속성, 성품이 예배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흘러오는 것이다. 우리가 굳이 '사랑해야지' '거룩해야지'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흘러오는 것이다. 하지만 10년이고 20년이고 흘러 예배할 때에도 다른 사람이 내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할 수 없다면 그것은 큰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예배인도자가 앞에 서있기만 해도, 그것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배인도자는 예배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우러나지 않는다면, 예배의 태도나 예배의 습성을 바꾸어야 한다. 올바로 예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거나, 습성처럼 예배한다는 것,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는 예배를 하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것이, 예배의 시간에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다. 늘 예배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예배할 수 있다. 그렇지 않는다면 예배인도자로 앞에 선다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작년 이맘때쯤, 상당히 바쁜 삶을 살았다. 가정도 소홀히 하고. 그러면서도 안에 당당할 수 있던 것은, '나는 지금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항상가정과 사역이 충돌하면, 사역을 우선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려 하는데, 마음이 무겁고 하나님이 무언가 말씀하시려 하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말씀을 펴놓고, '하나님, 지금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까?' 예레미야 2장 말씀. '이스라엘이 두 가지 악을 행했는데, 하나는 생명의 근원인 나를 떠난 것과, 나를 떠나서 스스로 노력하여서 웅덩이를 파서 생수를 얻으려 하는데, 그것은 생수가 아니다. 지금 네가 해야 할 것은, 어떤 사역이 아니라, 내게 머물러 있는 것이다.'라는 말씀이었다. 정작 하나님 앞에 1:1로 대면하여 머물러 있는 시간이 점차 줄어드는 것.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안타까워하신 것이다. 나중에는 하나님 앞에 머물러있지 않아도 사역할 수 있는 사람인 양 행동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때에서야 즉시로 회개하고,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모든 것을 접고 포기하게 될지라도 하나님 앞에 머물러있기를 원합니다.'라고 고백했다. 사실 그 때에 하나님이 주신 찬양이 '내 갈급함'이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쏟으며 고백할 때 나온 곡.


내가 온전한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서기를 원한다면, 어떤 것과도 바꾸지 않고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하루에 얼마만큼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는가? 바쁜가? 아직까지 내 마음을 뜨겁게 하는 것이 있다면, 캠퍼스 시절에, 누구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서, 누구보다 먼저 교문에 들어서서, 학교에 있는 모든 건물들을 만지며 밟으며 기도하며 그 땅에 하나님의 임재를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 아침 묵상 모임을 .하고 수업에 들어가곤 했다. 이 것이 예배자로서 사는 삶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이 것이 무너지면 예배자로서 가장 치명적인 것이다. 몇 번은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지 않고도 그냥 예배인도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점점 바닥을 보게 되면서, 길어낼 것이 더 이상 없어지면서, 처참히 무너지는 상황을 보게 될 것이다.


기름부음 받은 예배자


먼저 기름부음 받은 예배인도자가 되라. 여러분 안에 기름부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여러분 주변에서 말해줄 것이다. 막연한 격려 차원이 아니라, 정말 기름부음을 인정하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요일 2:27장에 보면,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고 말한다. 기름부음이 있으면, 더 이상 사역을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공급함이 우리의 삶 속에 있고, 그 것이 예배에 흐르게 될 것이다. 결코 짜내지 말라, 애쓰지 말라. 예배는 짜내어 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공급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면, 그것이 예배인 것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기름부음이다.


고형원 형제님. 그 분이 사실 캠퍼스에서 찬양인도 할 때에, 리더들에게서 기도 받고 세워진 사람이다. 그렇게 뛰어난 연주가 되었던 것도 아니고, 목소리가 뛰어난 것도 아니다. 놀라운 것은 그 분이 예배할 때에는 그 모임에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케 되는 것을 모든 사람이 경험하였다.


기름부음을 위해 기도하라.


경배자


두 번째로는 경배자가 되어야 한다. 경배자로서의 삶을 살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권능을 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예배인도자가 기름부음이 없으면 그 예배에 은혜가 없는가? 아니다. 큰 은혜가 있을 수 있다. 예배인도자와는 상관없이 회중들을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께서 회중에게 직접 하나님이 만지시는 경우이다. 그러나 예배인도자는 어떤가? 참으로 불쌍한 신세가 아닌가?


콘티 때문에 고민하고 짜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은 평소의 삶에서 하나님을 느끼지 못할 때 오는 gap이다. 뭔가를 느끼건 느끼지 않건 상관없이 단 한 곡만으로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 하나님이 그 곡 안에, 여러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다른 사람이 그 곡을 부를 때에는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데, 여러분이 할 때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또한 평소에 많은 곡들을 장전해야 한다. 평소에 하나님을 깊이 예배하면서, 경배의 시간을 가지면서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흘러나오는 경배들이 있다. 이것은 이 곡 다음에는 이 곡 이렇게 짜는 레퍼토리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간에 그 장전된 것들을 뽑아서 예배할 때에 엄청난 능력이 부어진다.


이것은 평소의 삶 가운데의 경배에서 나오는 것이다. 대상 16:37 ‘다윗이 아삽과 그 형제를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머물러 항상 그 궤 앞에서 섬기게 하되 날마다 그 일대로 하게 하였고’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 늘 서있었다는 것이다. ‘그 임재를 사모하여 그 분을 섬겼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랬기에 그들의 예배에는 능력이 있었다.


음악적인 자질


또 한 가지가 있다면 음악적인 자질이다. 대상 15:22에 보면, ‘레위 사람의 족장 그나냐는 노래에 익숙하므로 노래를 주장하여 사람에게 가르치는 자요’라고 말한다. 스스로 노래를 주장하여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 곡에 대해 숙지하고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함께 하는 회중이 참 힘들다. 그러나 어떤 스킬이나 환상적인 연주가 그 예배를 좌지우지하리라고는 착각하지 말라. 사람들을 솔깃하게 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예배에 은혜가 나타나도록 좌우할 수는 없다. 다만 여러분의 것들을 풍성히 나눌 수 있는데 있어서 연주 실력이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라. 공교히 연주하라.


성실함과 충성됨


또 한 가지가 있다면, 성실함과 충성됨이다. 이 것은 정말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캠퍼스에서, 교회에서 예배로 섬기면서, 보잘것없다고 하는 자리에서 섬길지 모르겠다. 누구는 앞에서 멋지게 찬양하는데, 나는 작고 보잘것없는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일에 충성할 때에 더 나은 것, 더 귀한 것을 맡기신다.


제 경험을 보면, 95년도에 UDTS 간사였는데, 찬양인도를 하고 있을 때, 예배 인도라는 명확한 비전을 주셨다. 그것을 놓고 기도하고 있는데, 화요모임에서 연락이 왔다. 바로 사역 이동을 하게 됐다. 사실 대학사역에서 일반사역으로 옮기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화요모임으로 간 날, 저를 콜링했던 사역자님이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것이다. 다른 사역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저는 갑자기 공중에 벙 떠버렸다. 그때 이후로 3년 반 동안 예배인도를 해본 적이 없다. 1년 후. '하나님, 저 여기 있는 거 맞죠?' '맞다'. 2년 후.'주님, 여기 있는 거 맞죠?' '맞다'. 하지만, 나는 이 모임에서 가장 중추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데 하는 갈등. 누구에게나 있다. 제 스스로 그 때의 위치를 볼 때에, 사이드 미러와 같은, 있으면 편리한데 없어도 차가 가는데 에는 전혀 상관없는 존재와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화요모임을 위해 중보기도 하면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그렇게 3년 반 동안 섬겨왔다. 나중에 하나님이 찬양인도자로 세우셨을 때, 얼마나 감사했는지. 그 동안의 일들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이렇게 있을 수 있을까? 어떤 찬양인도자는 6개월 하고 사라지고, 어떤 사람은 한 번 하고 서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단명하고 끝난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역대 예수전도단에서 찬양인도로 섬겼던 누구보다 더 오래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그런 시간들을 주지 않으셨다면, 지금 내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섬길 수 있을까? 없었을 것이다. 비중 있는 일들을 하고 있는가? 비중 없는 일들을 하고 있는가? 충성되이 섬기라.


순복함


또한 찬양인도자는 순복함이 필요하다. YWAM은 특이하게 예배인도자와 찬양인도자가 분리되어 있다. 여러분은 예배인도자와 갈등을 겪은 일이 없는가? 아마도 있을 것이다. 찬양인도자와 예배인도자 간에는 역할에 갈등이 있다.


처음에는 찬양인도자는 찬양만으로 승부하고, 예배인도자는 예배의 흐름과 멘트 등으로 승부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희곤 간사님과 예배를 섬기고 있을 때, ‘주의 사랑을’로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들어가는 찬양을 하고 있는 순간, 희곤 간사님이 ‘주형아 우리, 예수 우리 왕이여 하자’라고 말씀하셨다. 도저히 그 분위기가 아닌 것 같은데. 그냥 내가 생각한 것으로 밀고 나갔다. 예배에 은혜가 있었는가? 아주 큰 은혜가 있었다. 그러나 찬양인도자와 예배인도자의 관계의 관점에서는.


희곤 목사님의 책에서도 나오는데, 화요모임에도 암흑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 암흑기의 원인은 대부분 찬양인도자와 예배인도자의 갈등으로 비롯됐다. 찬양인도자는 예배인도자에게 순복해야 한다. 그러나 암흑기라고 하는 그 때에는 찬양인도자가 예배인도자를 무시하던 때였다. 그런 예배 안에 하나님이 더 풍성히 역사하실 수 있던 것을 얼마나 제한했었는지. 정말 이 곡을 하면 딱일 것 같은 타이밍을 놓치고 싶지 않을 때, 막 분위기 뜨고 있을 때 희곤 간사님의 말, '우리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 하자'.그냥 하자고 하는 대로 했다. 한창 뜨고 있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재빨리 수습하고원래 하고자 했던 찬양을 하자 분위기가 급상승했다. 그러나 분위기가 되던 안 되던, 뜨던 안 뜨던 둘 사이에 신뢰가 생기는 것이다. 그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가져야 할 마인드이다.


어떻게 콘티를 준비하는가? 저 같은 경우에는, 아침부터 모여서 중보기도 하면서, 말씀 주신 것들과, 마음 주신 것들과 여러 가지 것들을 듣는다. 그리고 오후 내내 묵상하고 기도하고, 저녁 시간에 홀로 골방으로 들어가서 곡을 뽑는다. 어떨 때는 한 곡을 위해서 2-3시간 동안 씨름할 때도 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서너 시까지 갈 때도 있다. 그렇게 은혜로, 기도하면서, 말씀하신 것으로 준비한 콘티를 뿌듯한 마음으로 무대에서서 척 펼쳐놓는데, 갑자기 하나님이 뒤통수에 대고 말씀하신다. ‘덮어!’. 아니, 그러면 어제까지 말씀하신 것들은 다 뭐란 말입니까? ‘덮어’. 무시하고 그냥 할 때가 있다. 예배에 은혜가 있는가? 놀라운 큰 은혜가 있다. 그러나, 내 마음에 평강이 없는 것이다. 반대로, 정말 덮었을 때, 은혜가 있는가? 없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실망할 수도 있다. ‘저 윤주형이라는 사람, 참 기름부음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영 아니구만’. 하지만 우리의 우선순위가 무엇인가? 사람에 대한 예배인가?


거룩함


또한 중요한 것은 거룩함이다. 어떤 것과도 절대로 바꾸지 말라. 다윗이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크게 아파하고 회개할 때가 바로 밧세바와 동침하고 우리야를 죽인 때였다. 그는 ‘내게서 주의 성신을 거두지 마옵소서’라고 절규한다. 그는 이미 기름 부음 받아 세워졌던 사울이 불순종할 때, 성신이 그에게서 떠나고 악신이 들려 비참하게 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은, 부정한 우리에게 임하실 수 없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라.


이전에 거룩함이 깨어진 예배인도자를 너무 많이 보았다. '저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너무나도 존경하던, 다른 사람들도, 그 분이예배인도하실 때는 기름부음이 넘치고 임재가 넘쳤던 그 분이, 결혼도 하신 분인데, 단 한 번의 실수로 너무나도 철저히 곤두박질치는 것을 보았다. 그 때에야 생각했다. '예외는 없다.' 나도 그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회복하려 애쓰는데 잘 회복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사역을 다시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무대에 설 때, ‘저 사람은 전에 어떠어떠했던 사람이잖아?’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릴 때,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회중에게 흘러가기는 참 어렵다.


예배의 흐름


요즘 모던워쉽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예배의 성향이라고 할까 조류라고 할까? 모던락적인 요소, 심플하고 소프트한 사운드가 예배에 가미된 것. 가요에서 치면 자우림, 델리스파이스의 모던 락적인 분위기와 비슷할까? 어느덧 ‘모던락적인 느낌’이 ‘예배적’이라는 느낌으로 고착되게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자우림이나 델리의 노래를 들으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거 상당히 워쉽풀한데?’ 개인적으론 모던 락적인 예배곡은 예배에 깊이를 두어야 할 때는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여러분도 사용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물론 세계적인 예배의 조류, 흐름이 있다. YWAM 안에도 성막 예배의 모델이 있다. 요즘에는 다양한 예배의 형태가 있는 것 같다. ‘YWAM 예배는 항상 똑같다’, ‘성막 모델만이 예배의 모델이냐’ 등등 많은 말이 있었고, 다윗의 장막 모델도 등장했다. (여기서 다윗의 장막은 영동제일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의 제사를 거쳐서 물두멍을 지나 성소로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장막 안에 법궤가 노출되어 있었고 임재 안에 바로 들어가고 그 곳에서 춤추고 예배할 수 있었던 장막. 이미 예수님이 휘장을 찢으셨는데 굳이 성막을 다 거쳐야 돼냐. 물론 특정한 것이 옳은 틀은 아니다. 모던워쉽과 빈야드 계열의 흐름을 보면, 그 예배 형태는 한 곡 한 곡에 깊이를 둔다. 한 곡 한 곡을 충분히 부르고 그 곡에 충실한 후에 다음 곡으로 넘어간다. 이런 여러 가지 예배의 흐름이 있다.


그러나 YWAM의 예배에는 무언가 하나로 몰아가는 흐름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바로 선교이다. 우리의 목적은 기름부음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기름부음이 가득한 예배를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 곳에는 부흥은 없다. 작은 교회의 경우에는 그것이 절실하다. 예배에서 기름부음이 일단 넘치고, 그 곳에서 사람들이 임재를 느끼고 치유를 얻고, 그런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성소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 곳에서 무엇을 보는가? 사 6장에서 이사야와 같이. 그 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우리의 모든 가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눈을 본다. 고형원 형제님의 곡,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듯이, ‘주님의 눈은 열방을 향해' 있다. 하나님의 눈은, 잃어버린 영혼이 있는 열방을 향해 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심장을 품고 그 것에 헌신하여 나가는 것이다. 화요모임, 금요모임 모두 열방에 대한 마음을 품고 드리는 예배이다. 그것은 화요모임과 금요모임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그 모임들이 오대원 목사님 시절 처음 시작되었을 때, 그 이름은 각각 "화요 중보기도모임", "금요 중보기도모임"이었다. 나에게서 멈추거나 기름부음 받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하나님의 심장을 나의 것으로 만들라.


나누고 싶은 많은 것들이 있지만, 시간이 모자라 다 나누지는 못하겠다. 위의 것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들이다. YWAM 안에서 찬양인도자를 하면서, 삶 속에서 다루신 것들, 경험한 지혜들이다.


특히 거룩함은 생명과 같이 여기라. 아무리 저수지의 수원이 맑다 하더라도, 그 수도꼭지가 녹슬면 깨끗한 물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하나님과 회중의 사이에 예배인도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예배인도자는 거룩해야 한다.


※ 적용

1. 거룩함을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하자.

2. 기름부음이 있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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