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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예수를 깊이 알아가자

주현이 2002.06.03 01:24 조회 수 : 2084

누가복음1:1-10

1:1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

사람들은 사람에 대하여 알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개인신상에 관한 이야기들이 입에 쉬이 오르내리게 됩니다. 특히 유명한 사람일수록 그 사람에 대하여 더 알고 싶어지고 그 사람은 화제 거리가 되곤 합니다. 특히 청소년들은 거의 열광적으로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들에게 집착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에 대하여 진실로 알기 원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를 사람들에게 바로 보여 주기를 간절히 원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안디옥에서 태어난 의사 누가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똑똑한 노예들을 선택하여 의학공부를 시켰기 때문에 이 사람도 노예였으리라 추측됩니다. 그가 거기서 예수를 믿었고 노예에서 해방을 받은 후, 안디옥 교회 교인이 되었고, 거기서 존경하는 스승이요 목회자인 바울과 바나바를 만났고, 이들 아래서 신앙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바울과 세계선교에 동행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성령의 기적의 역사를 보았던 이 사람은 예수라는 분에 대하여 분명히 알고 싶었고 자신도 예수를 분명하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도대체 예수라는 분은 어떤 분이셨는가?", "그분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사셨는가?" "또 그분이 당했다는 고난과 십자가는 무엇이고 부활은 어떤 것인가?"
예수에 대해 궁금한 것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이 로마황제의 재판을 기다리며 가이사랴 감옥에서 지낼 때 그 안에서 바울의 주치의로써 고난을 함께 했습니다. 그때 그는 감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친히 예수에 대해 질문도 하고 듣기도 하면서 예수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또 그는 로마로 재판을 받으러 떠나던 바울과 함께 동행했던 사람입니다. 그 당시 법에는 원래 죄수와는 아무도 동행할 수 없었습니다. 단 죄수와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의 노예만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의사 누가는 바울과 함께 로마 길에 동행하기 위해 그의 노예가 되어서 그가 감옥생활과 함께 순교할 때까지 노예가 되었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예수제자의 길, 진정한 예수를 배움은 오직 그의 노예가 될 때만 가능합니다.

누가가 바울 사도를 돕는 가운데 놀라운 사실은 역시 바울을 도우러 온 마가(Mark)를 만난 일입니다.(딤전4:11, 몬1:24) 이 사람은 마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일 뿐 아니라 그는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의 집에 자주 들렸었고 예수를 따라다니며 주께서 하시던 모습을 친히 목격하고 본 사람입니다. 특히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그의 집은 교회로 변해서 신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던 집안의 아들입니다. 이런 마가와 함께 그곳에서 지내면서 누가는 마가를 통해 예수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 로마에 온 베드로를 만나서 그가 알고 있었던 예수에 대한 지식이나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순교하는 모습을 보고 그 후에 붓을 들고 기록한 책이 바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입니다.

오늘날 대부분 사람들은 예수에 대하여 알고 싶어하면서도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또 예수에 대해 알려고 하는 사람들도 자기란 안경을 통해서만 예수를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는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오직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볼 수 있고,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주님이 도마에게 나타나서 하신 말씀이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더 복되다"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바라볼 때 인간의 안경은 벗고, 믿음의 눈으로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깊이 보는 것이요 깊이 아는 방법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에 대하여 바르게 알기를 원했을 뿐 아니라, 데오빌로라는 분에게도 배운바를 확실하게 알려주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면 데오빌로라는 사람은 과연 누구입니까? 데오빌로 아직 예수를 잘 알지 못하는 분 같습니다. 그래서 그를 로마의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로마의 귀족에게 기독교는 로마를 반대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어 그도 예수를 믿고 로마인들도 저항 없이 예수를 믿도록 하려 했습니다.
'예수를 소개해 주자.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예수를 만나게 하자.'
이것이 누가의 근본 정신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만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예수를 만나기만 하면 사람이 변하게 됩니다. 인격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고, 생활이 변하게 됩니다. 또 언어가 변하고 자세가 변합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가난한 자들이 가난을 벗고 일어서며, 교만한 자들이 낮아지고 하나님을 모르던 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난을 당하는 사람에게도,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분들에게도, 가난한 분들에게도, 부자라고 자만하는 분들에게도 예수님을 소개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의 최고의 사명이어야 합니다.

예수를 소개해 주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들이 누가처럼 예수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좀 더 넓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바르고 정확하게 소개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오직 예수만 닮아 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깊이 아는 한해가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바로 아는 지식과 깊은 말씀을 연구하는 중에 일생을 주님께 헌신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보통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는 불이 꺼지고 조용해 집니다. 그래서 무대가 열릴 때 사람들이 집중하도록 해 줍니다. 큰 공연을 할수록 반드시 사회자가 나와서 “여러분,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막이 오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사라진 뒤 무대가 열리게 됩니다. 세례요한은 바로 무대가 열리기 전의 사회자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지구라는 무대 위에서 이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임마누엘 되어지는 그 순간에,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때에 세례요한이 먼저 와서 “여러분, 많이 기다리셨죠. 이제 우리가 기다리던 그 메시야가 곧 나오시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사라질 때도 잘 사라져야 합니다. 어떤 가정에 초대를 받았는데 저녁 식사도 하고 얘기를 어느 정도 나눠서, 주인이 ‘이제 그만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전에 일어서야지 눈치도 없이 계속 있으면 미움을 받습니다. 아쉬울 적에 가는 것이 좋습니다. 세례요한은 그런 역할을 잘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등장하시고 공생에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세례요한은 사라졌습니다.

마지막 선지자가 와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이전에 하나님께서 계속 선지자를 보내셔서, 오실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우리 인간이 어떻게 준비하고 살아야 되는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 일을 담당한 사람이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를 계속 보내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고 메시야를 영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기 전 수 백년 동안 선지자가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선지자가 와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해 주신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무대의 막을 올려 주었던 세례요한은 가장 마지막 선지자였고 가장 큰 선지자였습니다. 다른 선지자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했지만 그는 예수님을 보고 직접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마지막 선지자로 세우셨고 그는 율법을 가장 잘 지키는 자였습니다. 세례요한 자신 뿐 아니라 부모들까지도 성경에서는 의로운 부모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존경받고 혈통있는 집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요한은 가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도 완벽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신 하나님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살았고 옷은 짐승의 가죽이었으며 음식은 석청이었습니다. 왜 그는 그러한 생활을 하였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오시는 시점에서 그로 하여금 세상 인간들에게 정결케 살 것을 알게 하셨고 그로 하여금 메시야를 준비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절망을 가르쳐 주고 아무리 율법적으로 살아도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도덕과 윤리를 아무리 외치며 살아도 그것이 구원을 주지 못함을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똑같이 “공부가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을 하였을 때 어떤 이의 말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도덕적인 사람과 비도덕적인 사람이 “도덕적으로 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했을 때 어떤 이의 말을 신뢰하겠습니까? 세례요한은 정결하고 율법적으로 살았으나 결국은 인간이 참되고 완벽하게 살 수 없음을 알림으로써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준 것입니다. 물론 율법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구원을 얻지는 못합니다. 교회를 나오는 이유가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살자는 설교를 듣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으로는 근본적인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 바로 세례요한이 이것을 잘 정리해 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로 안내한 세례요한은 마지막 선지자요,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바르게 모셔야 합니다. 그를 볼 뿐 아니라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 살고, 예수 안에서 죽고, 예수 안에서 일하고, 예수 안에서 쉼을 찾는 바로 이 사실을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세례요한을 보내셔서 말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내가 곧 진리다. 내가 곧 모든 율법을 완성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 안에서 자유함을 얻습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어졌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이제 새로운 존재가 되어진 것입니다.


교회 게시판에 올라온 글인데... 뜨끔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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