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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이맘때쯤엔

정수 2002.10.28 19:38 조회 수 : 1825

중국 전도여행 준비가 한창이었었겠죠?

제가 처음 YWAM 몸에 들어와서 정규모임에 나가기 전 들렀던 곳이
바로 이 러브노트였습니다.

그리고 채 새학기 글들이 많이 올라오기 전에 있던 글들은 중국겨울전도여행에 대한 것이었죠. 그 몇몇의 전도여행 팀원들간의 글들을 보며 이 ysywam이라는 곳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뭐 비행기 탄다는 것도 그렇지만(^^;;) 팀원들간의 (적어도 그때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친밀함이 느껴졌었거든요. 그 안에 있던 따스함을 나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하며 ywam 초기 생활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겨울, 중앙아시아 타직으로 실제로 전도여행을 떠났던, 그런 기억이 있죠. 그곳에서 솔직히 뭐 거창한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나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한 긍휼한 마음은 느끼지 못했지만,

그들이 겪고 있는 전국가적인 가난과, 그에 대비되는 그들의 순박한 영혼, 그리고 그들 안에 이슬람이 주고 있는 두려움들을 보았습니다. KGB가 지켜보고 있을지도, 아니, 분명히 있을 학교에서 담대하게 성경책을 나눠주던 형제의, 그리고 고향에 내려가서 개종했다는 이유만으로 피투성이가 된채 맞고 쫓겨나기까지 예수님을 시인하던 형제.

"나는 전통적인 이슬람 가정에서 자랐습니다."라며 간증을 시작한 형제와, 그에 답례로 장모 형제님이(^^;) "나는 전통적인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라고 시작한 간증이 대비되며,

귀국한 이후에 전형적이고 형식적이라고만 생각했던 예수교 장로교 합동 교단의 예배가 그렇게 은혜스러웠던 적은 지금까지 없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3000여곡 하드에 저장해놓고선 듣지도 않던 자그만 CCM, Worship곡 하나 틀어놓고 그 영적인 풍요로움에 얼마나 마음이 녹는듯 했는지 모릅니다.


YWAM이 설립되었고, 또한 지금까지 존재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버리지 아니하시고 이제까지 기름부음 속에서 들어 사용하시는 단 한가지 이유는, YWAM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기 원하며,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일들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며, 열방을 제자화하는 것입니다.

복음화의 정의가 무엇인지 아세요? 그건 복음을 한 번 이상 들어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각 외로 너무 조촐하죠? 하지만 YWAM의 vision은 그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YWAMer가 있는 곳이라면, 그 곳이 하나님을 향하여 변화되고,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흘러 넘쳐야 합니다. 그 땅이 복음을 들을 뿐 아니라 변화되고 제자가 되어 또 다른 한 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YWAM이 세계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열망이고 Vision이며, YWAM Korea가 한국을 향하여 가지고 있는 Vision이고, YSYWAM이 연세대를 향하여 가지고 있는 열망입니다.


패트릭 존스턴의 저작 "교회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큽니다"의 제목을 들어본 순간 - 물론 책은 안읽어봤죠 ^^; - 그 내용이 어떠하던지 제게 이런 영감을 주었습니다. '내가 바라보지 못하고, 내 나라 안에 있지 않고, 지구 반대편에 있다 할지라도, 그것 또한 교회이구나.' 라는 것을 말이죠. Opendoors 선교회에서 매달 발표하는 종교박해순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아가지 말아야 할 이유들은 어쩌면 우리가 나가야 할 이유보다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지 않고 수행해야 할 명령들도 어쩌면 우리가 나가서 수행해야 할 명령 못지 않게 크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마 단기라고도 부르지 못하고 초단기사역, 말 그대로 전도'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는 그 반대의 이유들보다 너무나 가슴아프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세속적 원리 아래서 돌아가는 경제적 불평등이나, 힘의 원리로 돌아가는 정치적 불평등과 똑같이, 복음의 영적 불평등이 저 척박한 땅에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영적인 비만과 자기불만족 속에 허덕이고 있을 때에, 저곳에서는 이 땅의 상 위에서 떨어진 은혜 한조각이라도 맛보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듣고 이해하고 영접한 순간, 한편으론 기쁨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당신들은 이런 진리를 가지고도 왜 우리에게 이제서야 오느냐고, 당신들은 1885년에 복음을 전해들었으면, 그동안을 무얼 하고 있었느냐고.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 내 동생들 언니들은 어떻게 되는거냐며 절규했다던 한 자매의 울부짖음을 전하던 그 선교사님의 말씀이 그때까지의 제 선교관을 뒤흔들어 버렸습니다.


어떠한 말을 하던지, 그리고 다른 정말 중요한 것들이 많지만, 이런 필요들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불과 10%만 되어도 우리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거나, 복음을 전하시는 분들을 돕거나, 또한 우리가 그들에게 나아가기 위해 준비해야 할 이유는 충분할진대, 이 세상에는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70-80%가 넘습니다.


전도하는 것이, 아니, 너무 피상적인 말인가요. 하나님의 사랑고백을 전하고, 진리를 선포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시키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고 깊이 성숙하는데 있어서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이거나 상관이 없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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