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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타세요?

임현명 2005.10.13 03:48 조회 수 :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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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한때 가을을 열심히 타고 다녔던 현명군.
최근에 가을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정리해 봤어요.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가을은 타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분명해졌어요.
감정적인 표현을 배제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역시나 문체는 쉽게 바뀌지 않네요.

하지만 읽으시는 여러분!
감정적으로 흘려 읽기 보다 이성적으로 곱씹으며 읽으셨음 좋겠어요.
개똥철학일수도 있겠지만,
가을을 타시는 우리들의 잘 설명되지 않는 마음을 저의 체험에 비추어 풀어보았으니까요.

자~ 그럼 시작합니다.

1.
전통적으로 가을은 추수의 계절입니다.
추수라는 것은 봄부터 수고한 한해 노력의 결실이죠.
그렇기에 우리네 시골에선 그 어느 때보다 가을에 인심이 후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바로 가을의 넉넉함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전통적으로 가을은 타는 것이 아니라
수확하며 나누며 즐거워 하는,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2.1
하지만 도시인들에게 가을은 조금 다른 의미입니다.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정작 도시인의 하는 일은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변하는 계절, 날씨, 기온에 맞춰 옷만을 바꿔입을 뿐입니다.
그리고 자연의 변화를 바쁜 일상 속에 틈틈히 관찰하며 즐거워하는 정도이지요.
자연과 하나되기를 마음 속 깊이 갈망하지만, 바쁘게 하는 여러 이유들로 인해 하나되지 못하고
결국 자연을 해방의 수단, 유희의 명목으로 삼게 될 때가 많습니다.
- 우리 날씨도 좋은데 산에 놀러나 갈까. 답답한데 바다에 가자. 이번 주말엔 벚꽃구경가자. 이런 식으로요...

2.2
때때로 감수성이 예민한 도시인들(아직은 그래도 여유가 있는 우리 학생같은 이들)은
자연 그 자체가 목적이 될때가 조금은 더 많습니다.
캠퍼스에 앉아 바라보는 학교의 풍경, 나무과 숲, 꽃과 낙엽에 그나마 민감하게 반응하죠.
경탄하고, 찬양하고, 그 자체를 즐기는 것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의 학업과 실질적으로 연관이 없는 그것은
우리의 감정을 추동하는 역할을 할 때가 많습니다.
화창한 날과 비오는 날, 꽃피는 봄과 나뭇잎 떨어지는 가을의 감흥이 다른 것을 보면 명백하죠.

그리고 그렇게 자연이 주는 감정의 미동은
나의 상황, 욕구, 선택에 의해서 때로 감당할 수 없이 커지곤 합니다.
물론 제 안에서도 빈번하게 있는 일입니다.

3.
가을이 주는 정서... 혹은 가을에 대해 우리가 선택하는 정서...
가을이 우리에게 어떤 정서를 주는 것일까요?
우리가 가을의 풍경을 보며 어떤 정서를 선택하는 것일까요?
물론 복합적이겠지요. 개인마다 다르겠고...

가을의 주된 이미지 중 하나는 상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많은 사람들을 "가을에게 태우는" 이유가 되죠.
여름내 푸르렀던 나뭇잎이 말라 떨어지는 그것,
할머니의 야윈 손목 마냥 점점 앙상해져 가는 가지들을 보며
사람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뭔지 모를 상실감, 공허함을 느끼게 됩니다.
자연이 겪는 그 상실이 마치 내것인양 나의 상실로 이입되죠.
예전의 추억들... 다시 오지 않을 그 날들, 그 일들, 그 사람들이 떠오르고,
그것이 다시 오지 않음에 서러워지고, 슬퍼지는 것...
이것이 가을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주는,
혹은 우리가 가을의 이미지를 접하며 선택하는 감정 추동의 간단한 메커니즘입니다.

4.
하지만 그 생명력의 상실이 과연 단순히 상실인가요.
또 다른 생명의 잉태인 것을 우리는 압니다.
봄, 여름을 인내하며 품어낸 생명을 해산하는 바로 그것이 가을인 것이죠.
낙엽은 그 생명을 덮어 보호하고, 나중엔 썩어 양분이 되는 것을요.
가을을 진정 가을 되게 하는 것은 이러한 다음 생명에 대한 나무의 헌신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헌신보다는 상실만을 봅니다.
육신의 눈으로 무엇을 보는가는 때로 나의 선택이 아닐 수 있지만,
영의 눈 혹은 감정의 눈으로 무엇을 보는가는 분명히 나의 선택입니다.
따라서 나의 감정에 대한 책임을 단순히 가을에게만 전가 시킬 수 없는 것이죠.

5.
외로움...(영어영문학과 오진숙 교수님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모든 사람은 원래 "혼자"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본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실 때 하나님 앞에 홀로 서게 하셨고,
어느 누구도 누구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도록, 대신 죽어줄 수 없도록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본전이 "당신과 함께"인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홀로 있을 때 외로워 하며 슬퍼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혼자"인 존재로 태어난 우리가 가질 태도인가요.

"혼자"라는 우리의 본전에 대한 사실을 온전히 수용한다면, 우린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사람보다 친구가 적은 내 모습을 보며 슬퍼하기 이전에
내 옆에 있는 단 한 사람으로 인해 진심으로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때로 혼자라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아... 나는 원래 혼자인걸..."이라는 체념조의 한탄이 아니라 겸허한 수용이 있을 수 있을거에요.

*.
가을...
감정에 내 몸을 맡긴채 마냥 쓸쓸해 하기엔 너무 아름다운 계절이에요.
그리고 여러분들 곁에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이 사람들이 너무 귀하잖아요.
"혼자"로 태어난 나의 곁에 함께 있어주는 "너"라는 존재들...
공기처럼 늘 함께 있어서 내가 혼자라는 "사실"조차 잊게 하는 그 사람들...
우리는 분명 수지 맞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우리의 평생이 그럴꺼구요.

역시 가을엔 감사가 제격이에요.

가을 타지 말고, 가을 감사 해요.
주님께, 가을에게,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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